가족이야기 25

2024년 설날

공로연수 중에 맞이한 이번 설은 4일간 연휴. 지난해부터 명절 당일날 아침에 제사 모시러 간다. 좁고 낡은 시골집에 조카들에 애들까지 꽉 차서 잘 공간이 부족하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어머니께 세배부터 드리고 떡국먹고 난 후에 제수를 정성껏 진설하여 엄숙하게 제사를 모신다. 이제 한창 재롱부릴 나이가 된 손주들이 모두 여섯. 제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잘재잘 조잘조잘 거리다가 저들끼리 웃음이 터진다. 보기좋고 듣기좋고 흐뭇하기만 하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맛이 아니던가. 어머니는 제사 참여않은지 오래됐고, 아버지도 제사 마지막에 절을 올리시는데 혼자서 일어서지 못해서 부축을 해야된다. 그리도 정정하고 꼿꼿하시더니 가는 세월이야. 우리집에, 작은집에 90대 노인이 4분이나 계시니 말그대로 고령화..

가족이야기 2024.02.13

어디쯤?

어머니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치매약 드신지 한3년쯤 됐는데 올 봄부터 여름 가을 지나면서 눈에 띄게 인지력이 떨어진다. 손자손녀들 이름을 기억 못하시더니 이제는 며느리들 이름까지. 아들딸들도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는건지 안나시는지 그냥 "야야, 왔나.", "야야, 밥먹어라." 이런식이다. 열 명의 자식을 자신 뱃속에 열달간 품어 낳은뒤 그 중 둘은 잃고 여덟을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배곯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오셨건만. 차마 어머니한테 내가 누군데?라고 여쭤보지 못한다. 혹시라도 몰라라는 대답을 들을까봐 너무나 두렵다. 잘아는 지인의 어머니는 대소변 못 가리는지 오래됐고 본인 이름도 까먹고 남편 이름도 까먹고 자식들 이름도 까먹었는데, 낳아주신 친정엄마와 먼저보낸 큰아들 이름만..

가족이야기 2023.12.14

외할매

2023.12.03.(일) 요즘 시골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다. 주부양자인 형님내외분이 모처럼 해외여행을 떠난터라 내가 주부양자 역할을 하고 있는것. 아침식사며 설겆이를 우째주째하고, 형님이 시킨일ㅡ과일저장창고 환기ㅡ도 잘 하고나니 오랜만에 외할매(외할머니의 경상도 방언) 산소에 들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 무덤ㅡ왠지 산소보단 정겹게 느껴진다. 묻엄. 묻은곳이 변화해 무덤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에 있는 처소란 뜻의 산소보다는 투박하지만ㅡ은 우리집에서 직선거리로는 200m도 안되는 곳에 있지만 가 뵌지가 참 오래되었다. 어린시절 같은 마을에 있는 외갓집에서 놀던 추억이 참 많다. 외할매만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외할매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상석에도 달성서씨..

가족이야기 2023.12.03

군불

2023.11.6., 월요일 군불때며 불멍을 때리니 몸이 노골노골 불속으로 빨려들 듯 하다.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시골집 사랑채는 지은지 한50년 되었는데 아직 방고래, 구들이 있어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군불을 땐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물론 바닥에 전기장판이 깔려있어 견딜만하긴 하지만, 그 당시 나무로 뼈대를 세운고 블록으로 벽을 채우고 요즘같이 스티로폼이나 두꺼운 재질로 만든 보온단열재를 안 썼으니, 읏풍이 세서 한겨울에는 방에 앉았으면 입에서 허연 김이 들락날락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깔고앉은 땅이 큰집 땅이고 아버지가 당신 죽기전까지 집에 손대지 말라고 하시는 통에 이 지경이다. 추위도 그러하거니와 화장실이 따로 없어 사시사철 요강을 이용하는데 몸 움직이기 힘든 어머니가 밤에 자다가 소변을 보..

가족이야기 2023.11.08

심내막염

2023. 10. 7. ㅡ10.9. 토요일/3일연휴의 첫날. 아침일찍 시골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부터인가 이른아침이나 늦은밤에 전화가 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 몸이 안좋으니(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사흘째 지속) 와서 병원에 모시고 가라는 전화이다. 부랴부랴 씻고 운전해서 시골에 들어가는 길로 모시고 영천시내 유일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서 이런저런 검사끝에 내린 진단은 '심내막염'이 의심된다고. 심장을 감싸고 있는 얇은막이 있는데 그곳에 염증이 생겨서 물이 비정상적으로 많고 일부는 복강으로 흘러들어 복수가 차있는 상태. 무엇보다 위험한건 220을 오르내리는 혈압. 연휴기간 전문의는 부재라 대구시내 상급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가든지 택일하란다. 팔뚝에 수액주사 꽂고 피검사..

가족이야기 2023.10.09

돌잔치

2023.08.19.토요일, 구미 3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결혼 소식없던 생질이 어느 봄날에 결혼, 1년뒤에는 떡뚜꺼비(진짜 귀여운 떡뚜꺼비 닮음) 같은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니 어느새 1년이 지나 첫 돌잔치를 한다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구미로 달려가 축하해 주고 왔다. 요즘같이 결혼율,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대에 참으로 경사가 아닐수 없다. 무럭무럭 잘 커서 제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복덩이가 되길 바란다. 가문의 지역의 나라의 동량이 되면 더 좋고. 그 무엇보다도 씩씩하고 건강한 이 땅의 남자로 자라면 진짜 좋고.

가족이야기 2023.08.19

2023 성하ㅡ고향

2023.08.12.(토) 다시 고향을 찾았다. 늘 변함없는 모습, 맑은 공기, 우거진 풀들, 과일냄새, 흙냄새, 두엄냄새까지 고향은 그대로이다.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가고 어머니는 맑은정신과 흐린정신이 하루에도 수시로 왔다갔다 하고, 한집에서 모시고사는 형님 내외분의 수심도 날로 깊어간다. 진퇴양난, 오리무중, 앞이 보이지않는 깜깜한 바람부는 거친 황야를 헤매이는 심정이다. 아버지는 청력을 완전히 잃어 의사소통이 아예 절벽이다. 소통이 잘 안되니 크고작은 오해가 쌓이고 쌓여 서운함으로 바뀌고. 어머니는 치매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평소에는 입에도 담지않던 욕설을 수시로 내뱉고, 툭하면 며느리를 헐뜯고 의심하고 힐난하니 이를 어찌하리. 그래도 요양원만은 결단코 가지않는다 하시니... 그래도 고향의 들..

가족이야기 2023.08.12

가족식사

2023.06.24., 토요일 공로연수를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부모님부터 8남매 모두가 배우자를 동반하거나 최소한 한 분씩은 참석해 줘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눈이 불편한 큰 매형이 젤 걱정이고 힘든 농사일에 매형 저지레를 다 커버해야되는 큰 누님이 안쓰럽다. 맨날 웃으시고 우스개 소리도 잘해서 동생들 웃겨주시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옛날에 그 흔하다는 딸 하나없이 멀대같은 아들만 둘이니 살갑게 마음붙일 데나 있으려나. 몸 불편한 사람들이 있으니 가족들과 단체여행은 이제 엄두도 못내겠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짜리는 곧잘 다니곤 했었는데. 하기야 막내가 오십대 중반에다 칠십 넘은 형제도 둘이나 되니. 세월이 참 무상타. 오늘같은..

가족이야기 202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