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외할매

태봉산 2023. 12. 3. 22:44

2023.12.03.(일)
요즘 시골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다. 주부양자인 형님내외분이 모처럼 해외여행을 떠난터라 내가 주부양자 역할을 하고 있는것.

아침식사며 설겆이를 우째주째하고, 형님이 시킨일ㅡ과일저장창고 환기ㅡ도 잘 하고나니 오랜만에 외할매(외할머니의 경상도 방언) 산소에 들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 무덤ㅡ왠지 산소보단 정겹게 느껴진다. 묻엄. 묻은곳이 변화해 무덤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에 있는 처소란 뜻의 산소보다는 투박하지만ㅡ은 우리집에서 직선거리로는 200m도 안되는 곳에 있지만 가 뵌지가 참 오래되었다.

외할매 무덤

외할배무덤
외할배 무덤. 부부지간이면 나란히 묻는것이 상례인데 왜 높낮이가 있게 묻은것인지 문득 궁금

외할매 무덤에서 내려다본 우리마을. 중간에 직선으로 된 하얀 부분이 동네를 싸고도는 개울가 제방이다. 뒷쪽이 산이고 앞은 물이니 어엿한 배산임수의 길지가 분명하다.

어린시절  같은 마을에 있는 외갓집에서 놀던 추억이 참 많다. 외할매만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외할매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상석에도 달성서씨 지묘라고만 표기되어있지 이름은 없다.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인가?  인노댁(인호댁? 이노댁?)이 외할매 택호다. 그 시절에는 (지금도) 여인네들은 택호로 불렸다. 노패댁, 창동댁, 무슨댁  이런식으로. 인노댁의 남편, 외할배는 철성이공이다. 외할배 상석의 함자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과는 다르네.

외할매는 외할배와의 슬하에 4녀1남을 두었는데 장녀가 우리 엄마다.  33년생, 닭띠. 18살, 6.25전쟁통에 한마을에 사는 24살의  경주김문 총각에게 시집보냈으니 그 총각이  우리 아버지다.

명색 양반집이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이니 타고난 논밭전지가 있을리없고 땅부자이던 외갓집 땅을 소작하는데 1년동안 쎄빠지게 농사지어 줄줄이 딸린 8남매를 먹여키웠다. 어린시절  가을에 벼 탈곡을 하고나면 볏가마의 반은 외갓집에다 운반해야 했다. 아버지 양심에 장인이자 땅 주인에게 절반보다는 늘 조금씩 더 가져다드렸다.

어느핸가 8살,9살 무렵 어머니가 저녁먹고 어둑한 방안에서ㅡ그 시절에는 전기가 보급되기 전이라 호롱불 밑에서 생활했다ㅡ무슨 얘기끝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땅을 가져보냐며 서럽게  우셨다. 그때 나는 우리집이 참 가난하구나라고 첨 느꼈다.  
1년내내 뙤약볕에서,  비바람에 찬이슬을  맞아가며 농사지어서는 절반을 뚝 잘라 땅주인ㅡ그도 자기 친정아버지ㅡ에게 바치고나니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소리죽여 흐느끼는 그 울음소리보다 더 슬픈 울음은 아직까지 들어본적 없다. 그 속에는 가난한 현실, 지아비에 대한 원망, 친정아버지에 대한 원망, 앞으로 살아낼 겨울에 대한 절망감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겠는가?

내가 아는 인노댁은 남편말을 거스르는 적이 없었다. 말씀도 늘 공대를 하고 겸상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달성서씨라면 그 시절에도 세족이었다. 가난하게 사는 큰딸네 일을 도와주러 자주 밭에 오셨다. 외모는 곱상한데 목소리는 걸고 얘기를 얼마나 재미나게 하는지. 어린내게는 최고의 개그우먼이셨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노라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인노댁 왈, 하이고 시어마시야 뒤지게도 덥데이. 내리 딸 셋을 낳고 4번째야 아들을 봤으니 그 시절 시어머니  눈치를 얼마나 봤겠는가.  어쩌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 불어주면, 탁배기 사발 째지는 목소리로 하이고 니기미야 와이리 시원노.  그리하여 외할매, 어머니, 나까지 3대가 한바탕 웃어가며 그렇게 신고의 시절을 살아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나도 고등학교를 대구로 가게되고 외할매 외할배는 연로하게 되어 자주 외갓집에 못가게되고 외할배 먼저 별세하고 외할매도 풍을 맞아 부산에 있는 아들네로 가시는 바람에 외할매와 더 이상 재밌는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외할매 돌아가시고 묻히던 날에는  날씨마저 꾸무리하고 며칠전 내린 눈이 녹아 온 천지가 질퍽질퍽했던 기억이 난다.

우스운 얘기하고는 자신도 우스워서 키득키득 웃으시던게 더 우스워 나는 배꼽을 잡고 웃던게 생각난다.  외할매 세상버린지도 어언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세월이 무상타.

산에 간 김에 부질없이 이웃 무덤들 사진도 여러장 찍어보았다.

자손들이 관리를 안해서 버려진 무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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